양자역학의 다세계 해석

양자역학의 다세계 해석 - 멀티버스, 평행우주는 정말로 존재하는가

양자역학에서 다세계 해석에 따르면 이 세상은 거의 무한대에 가깝게 여러 개 라고 합니다.
그럼 마블 영화처럼 멀티버스 가 정말 가능하다는 건가?
이것을 알려면 우리는 전자의 성질을 알아야 됩니다.
전자는 입자인지 파동인지 말이죠.
원자핵을 돌고 있는 전자는 파동과 입자의 성질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다세계해석
파동을 이해하려면 파도나 소리를 생각하면 쉽습니다.
파도는 물이라는 매질을 통해서 에너지가 퍼져나가죠.
물속에 돌멩이를 던지면 파동이 일어나서 주변으로 쭉쭉 퍼져 나갑니다.
소리 또한 마찬가지죠.
아파트에 사는 누군가가 자신의 집에서 소리를 지르면 공기라는 매질을 통해서 파동 에너지가 아파트 단지 전체를 채워 버립니다.

파동의 특징 중 꼭 알아야 되는 것은 파동이 퍼져 나가다가 장애물을 만나면 휘어져서 돌아 들어간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보죠.
물결 파동이 커지다가 구멍이 뚫린 벽에 부딪치면 물결은 통과한 구멍에서 부터 다시 파동이 생겨서 퍼져 나갑니다.
이것을 파동의 회절 이라고 합니다.

이제 파동이 뭔지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입자란 무엇인가?
입자는 물질을 구성하는 아주 미세한 크기의 물체 입니다.
물이나 소리 같은 파동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물질들은 모두 입자의 성질을 갖습니다.
입자라는 건 아주 작은 알갱이 라는거고 이는 곧 질량을 가진 다는 뜻입니다.

여기 야구공이 있습니다.
이 아구공을 입자 라고 생각해 보죠.
야구공을 부엉이을 향해서 던지면 야구공은 부엉이에 부딪히고, 부엉이는 야구공을 맞고 쓰러지겠죠.
이처럼 입자는 야구공 처럼 한 방향으로만 이동합니다.
투수가 포수한테 공을 던지면 시속 몇 km의 속도로 어디에 공이 떨어지는 지까지 계산에서 예측할 수 있는 겁니다.

이제 파동이 뭐고 입자가 뭔지 알았습니다.
17세기에 뉴턴은 빛이 입자 라고 주장했고 이게 오랫동안 학계의 정설이었습니다.
뉴턴을 비롯한 과학자들은 세상 모든 물질을 파동과 입자, 두가지로 나눴죠.
과학자들은 물질들이 파동이면 파동, 입자면 입자지, 파동이면서 입자인 상태의 무언가는 있을 수 없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실험으로 모든 상식이 무너졌습니다.
이중 슬릿 실험을 통해서 말이죠.

슬릿은 길다란 구멍이라는 뜻입니다.
길다란 구멍이 두개 있으니까 이중 슬릿 실험이라고 부르죠.
구멍이 두 개 뚫린 판자 뒤에 판자를 하나 더 설치해 두고 전자를 쏘는 총으로 이 이중 슬릿을 향해서 전자를 쏴봅시다.

전자가 입자라고 생각한 과학자들은 이렇게 예상했습니다.
어떤 전자는 벽에 맞고 튕겨져 나올 거고, 또 어떤 전자는 구멍을 쏙 통과해서 벽 뒤에 있는 스크린에 도착하겠군.
이 실험에서 과학자들은 무수히 많은 전자를 이중 슬릿을 향해 쏘았습니다.
예상대로라면 뒤에 있는 판자에는 구멍을 지난 전자들이 달라붙어서 두 개의 줄무늬가 생길 거라고 예상 되겠죠.
그런데 결과는 완전 딴판 이었습니다.

두 개의 줄이 아니라 여러 줄의 간섭 무늬가 나온 것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의 전자가 두 개의 구멍을 지나서 여러 개의 줄이 나온 걸까?
전자가 파동이라면 가능하다.
전자가 파동이라면 처음부터 두 개의 슬릿을 동시에 지날 수 있다. 
전자가 파동이라면 이중 슬릿을의 간섭 무늬 패턴 하고 일치하게 된다.
즉 '전자는 파동이다'라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참 희안하네요. 전자가 슬릿을 어떻게 통과하는지 그 순간을 사진으로 찍어서 관측해 보십시다."
과학자들은 전자를 쏘고 난 직후 슬릿을 전자가 어떻게 통과하는지 확인해 보기 위해 사진을 찍어봤어요.
그런데 전자는 갑자기 입자성을 띄더니 2개의 줄무늬를 만들어 냈어요.
더 이상 전자는 파동성을 보이지 않게 된거죠.
그리고 또 다시 관측을 하지 않았더니 전자는 파동성을 띠고 여러 개의 간섭 무늬를 만들어 냈습니다.

양자역학에서 코펜하겐 학파의 수장 '닐스 보어'는 이것이 미시 세계의 본질이라고 했습니다.
"전자는 입자임과 동시에 파동입니다.
인간이 알 수 없지만 미시 세개가 원래 그런겁니다."
이해하기 힘든 미시 세개는 상자 실험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자 여기 상자가 하나 있어요.
이 상자 속에는 전자가 안에 들어 있습니다.
이 상자 속은 절대로 들여다볼 수가 없어요.
이 상태에서 상자 속에 전자는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양자역학에 따르면 우리가 상자 뚜껑을 까 보기 전까지는 전자가 어디에 있을지 확률적으로만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요?
아까 이중 슬릿 실험에서 전자는 파동임과 동시에 입자라고 했죠.
관측을 안했더니 파동성을 띠고 관측을 했더니 입자성을 띄는 아주 요상한 상태요.
자 상자 속에 존재 역시 파동임과 동시에 입자성을 띱니다.
상자속에 전자는 관측하기 전까지는 파동성을 띠면서 상자의 모든 곳에 확률적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즉 중첩 상태 있어요.
그런데 상자를 열어서 관측하는 순간 파동 함수가 붕괴되면서 입자성을 띠게 되고 전자는 단 한 곳에만 존재하게 됩니다.

만약에 똑같은 상자 속에 전자를 9개를 준비했다고 쳐요.
우리는 10분 후에 이 9개의 상자 뚜껑을 똑같은 시간에 동시에 열어볼 거에요.
이때 전자는 과연 상자 속에서 어디 있을까요?
뉴턴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고전역학파들은 이렇게 대답했을 거에요.
"상자속에 뚜껑을 까 봤을 때 모든 상자속에 전자는 같은 곳에 있을 것이오."

하지만 실험 결과는 아주 신기합니다.
상자 속의 전자 위치는 각각 다르게 나오거든요.
이 똑같은 실험을 100만 번, 1000만 번 반복해 봅시다.
이제 이 상자 속의 전자 안에서 특정한 패턴을 찾아낼 수 있어요.
상자속의 전자가 어디 있을지 확률로써 표현할 수 있는 거죠.
양자역학을 연구하던 학자들은 이 상자 속에 전자가 어디에 있을지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상자속의 전자가 여기 있을 확률이 2.5%, 또 저기 있을 확률은 17%, 여기 있을 확률은 0% 입니다."
상자를 까보기 전까지는 전자가 어디 있을지는 절대로 알 수 없고 확률만 알 수 있습니다.
단, 상자를 까서 확인하는 순간 정확하게 전자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코펜하겐 해석이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측정이란 무엇인지, 측정은 정확히 어떻게 수행되는 것인지, 측정하기 전에는 모르는데 왜 측정을 해야만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오는지까지.
코펜하겐 해석은 이런 것들을 설명하지 못하는 거죠.

'그냥 그렇게 된다.'
'그것이 미시 세계의 본질이다.'
'원래 그런걸 어떡하냐.'
라고 얘기할 뿐이죠.

그러다보니 양자역학에서 코펜하겐 해석에 반발을 하는 과학자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본인들이 연구하는 그 현상을 논리적으로 설명도 못하는데 이것이 제대로 된 학문이 맞는 거야?'
코펜하겐 학파를 공격했던 아주 대표적인 과학자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 유명한 '에르빈 슈뢰딩거', 그리고 상대성이론의 '알버트 아인슈타인'
슈뢰딩거, 그리고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여러 과학자들은 이런 미시 세계에서 벌어지는 '불확정성, 모른다, 관측, 중첩같은 현상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에버렛의 다세계 해석은 코펜하겐 해석의 측정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관측하는 순간 파동 함수가 붕괴되서 세상이 확정된다?
그걸 증명할 수 있습니까?
양자역학의 근본이 되는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에도 파동함구의 붕괴를 암시하는 수학적 변수는 없었습니다.
즉 파동함수가 분괴되면서 세상이 확정되는 게 아니라 측정할 때마다 파동함수는 슈뢰딩거의 방정식을 따라 움직이고, 그에 따라 나올 수 있는 결과 만큼 우주는 여러 개로 갈라지는 겁니다.

이 다세계 해석도 이중슬릿 실험으로 설명해 보죠.
이중슬릿 실험에서 전자는 측정하지 않으면 두 개의 구멍을 동시에 지나고, 전자의 상태를 측정하면 2개의 구멍 중의 하나에 구멍만을 지납니다.
기존 해석에서는 측정했을 때 전자가 오른쪽 구멍을 지났다면 전자가 왼쪽 구멍을 지나는 우주는 존재하지 않고, 전자가 왼쪽 구멍을 지났다면 전자가 오른쪽 구멍을 지난 세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냥 what if, 그랬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가정 중에 하나로 남게 될 뿐이죠.

그런데 다세계 해석에서의 주장은 조금 다릅니다.
다세계 해석에 따르면 우리가 전자의 상태를 측정하는 순간, 우주는 전자가 오른쪽으로 지나간 우주와 왼쪽으로 지나간 우주, 이렇게 두가지 우주로 나뉜다고 합니다.
중첩의 두 가지 가능성은 모두 실재하고, 우주가 갈라져서 두 가지 사건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뜻이죠.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체감상 여러 개가 아니라 단 하나 뿐이죠?
다세계 해석은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까?
여러분들의 몸을 잘게 잘게 계속해서 나누다 보면 결국에는 원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중슬릿 실험을 관측하고 있는 사람 역시 원자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양자역학의 지배를 받습니다.
다세계 해석은 이중슬릿 실험에서 관측하기 전까지는 입자는 물론이고 관측자까지 포함해서 중첩상태가 된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 측정했을 때 세계는 둘로 나뉜다고 하죠.
이렇게 관측자 까지 같이 중첩되어 있다가 입자를 측정함과 동시에 세계는 둘로 나누게 되니까 관측자 입장에선 세상이 나뉜다는 사실을 알 수가 없고 체감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관측이 일어난 다음에는 또 다시 중첩상태가 이어지고 중첩상태들은 결 어긋남으로 인해서 세계는 끊임없이 분리되고 태어난다고 합니다.
다세계 해석에 따르면 이런 중첩상태의 입자 운동을 슈뢰딩거의 방정식을 따라 진행하는 '유니타리 진행'이라고 하고, 입자가 측정될 때마다 우주는 선택지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나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유니타리 진행 → 측정 → 유니타리 진행 → 측정 → 유니타리 진행 → 측정 → 유니타리 진행 - 이런 과정이 계속해서 반복되면서 우주가 무안에 가깝게 계속해서 나뉜다고 합니다.
다세계 해석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여러분들이 말하는 공개니 확률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 관측자라는 존재가 자신의 양자 상태를 이해하려고 할 때 생기는 허상 같은겁니다.'

아마 여러분들의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가득할 것 같은데 양자역학의 아버지인 닐스 보어 역시 반응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어이없는 소리 다신 하지 말라면서 에버렛의 다세계 해석을 무시햇죠.
에버렛의 다세계 해석은 그렇게 대학원생들의 수많은 논문들 중 하나로 역사속으로 사라지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나서 코펜하겐 해석에 또다시 의문이 제기됩니다.
코펜하겐 해석처럼 세상이 확률로 전해진다면 '세계는 어떤 기준을 가지고 가능성을 선택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옛날 자료들을 뒤지다가 묻혀있던 다세계 해석이 다시 논의되기 시작합니다.
다세계 해석은 쉽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아직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측정' 문제에 대해서 복잡한 이론을 도입하지 않아도 되고 
'관측할 때마다 우주가 새로 갈라진다, 그냥 우주는 슈뢰딩거 방정식의 따라서 유니타리 진행한다.'
이렇게 단순 명쾌한 설명을 통해서 문제를 간단히 피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일부 현대 물리학자들은 다세계 해석을 지지하죠.

다세계 해석은 평행우주 세계관을 다루는 마블, DC를 비롯한 여러 미디어 덕분에 양자역학의 해석 중에 대중들에게 가장 유명한 이론입니다.
물론 다세계 해석의 위상이 예전보다는 좋아지긴 했고, 이 해석을 믿는 과학자들도 많아지기는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류이론은 아닙니다.
다세계 애석에도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죠.

다세계 해석의 문제점은 뭘까.
첫번째는 '관측'입니다.
다세계 해석에 따르면 '입자의 관측이 일어날 때마다 세개는 갈라진다'라고 하는데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관측은 자연계에서 아주 흔히 일어나는 입자 사이의 상호작용에 불과하다'라는게 밝혀졌습니다.

우주의 모든 입자들은 다른 입자들과 상호 작용할 때마다 관측이 일어납니다.
이 관측이 일어날 때마다, 입자가 충돌할 때마다 우주가 나누게 된다면 이 세계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우주가 존재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나뉘는지, 왜 나뉘는지에 대해서 까지도 다세계 해석은 그럴듯한 설명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코펜하겐의 해석을 보고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지 않냐 이렇게 디스해 놓고 자기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이론인 거죠.

두 번째 문제는 확률의 해석입니다.
다세계 해석에 따르면 양자역학이 말하는 확률의 의미 자체가 사라져 버립니다.
기존의 양자역학은 슈뢰딩거의 방정식에 따라서 확률론적 입장을 취합니다.
그런데 다세계 해석은 일어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건은 분리된 세계를 통해서 모두 실현된다 고 설명합니다.
즉 다세계 해석에 따르면 확률이 0 또는 1이 되는 셈입니다.
이렇게 되면 확률의 의미 자체가 사라져 버리겠죠.
확률이 높고 낮음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으니까요.

세번째로는 정말로 또 다른 세계가 나뉘는지 실험적인 증명도 절대 불가능하고

네 번째 문제는 물리량 보존 입니다.
세계가 분리되는 순간마다 이 세계가 중복해서 계속 생겨나기 때문에 분리되는 세계의 갯수만큼 물질과 에너지도 증가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이것은 상태 변화 이전 그리고 이후에도 언제나 물리량이 같다는 물리학의 기본 법칙,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위배됩니다.
마지막 문제는 정체성 문제 입니다.
이거는 약간 철학적인 문제인데요.
관찰자가 관찰을 할 떄 세계가 여러 개로 분리가 된다면 어느 세계에 있는 관찰자가 100% 그 자신 인지 알 수 없게 됩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떤가요?
이 세상은 한 개일까, 아니면 여러 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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