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페스팅은 쉽다(레딧 번역)

다음은 인터넷에서 본 글을 해석하여 옮긴 글입니다. 
개인의 주관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므로 사실 여부는 증명할 수 없습니다. 

Manifesting(매니페스팅)은 정말 쉽습니다

매니페스팅은-쉽다

이건 정말로 가장 단순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여기저기서 보고 있는 혼란을 조금 정리하고 명확히 할 때가 되었습니다.
 
자, 어디서부터 시작할까요?
저는 JJ입니다. 반갑습니다. 이 서브레딧에서 그동안 눈팅을 하면서 글과 초보자 스레드의 질문에 답변을 달아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항상 같은 유형의 질문과 같은 유형의 답변이 반복되는 걸 봤고, 약간의 설득 끝에 이제는 이런 공통 주제와 질문에 대해 명확히 설명해 우리의 시간을 절약하기로 했습니다.
저와 함께 해주세요. 이 여정은 길어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내가 공유하는 것은 내 경험, 관찰, ‘연구’ 등에 기반한 지식입니다. 매니페스팅은 같은 원리로 작동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만능 공식은 아닙니다. 우리는 각자 다른 경험, 믿음(제한적이든 아니든), 선호하는 ‘방법’ 등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이 내용이 당신 생각과 맞지 않고, 당신이 더 잘 안다고 생각한다면 — 좋습니다. 본인 방식대로 하세요.
앞으로 강한 표현(나는 욕을 자주 씁니다), 냉소적인 내용, 그리고 풍자적인 말투가 나올 것입니다. 일종의 터프 러브(tough love) 스타일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건 도움이 되고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지만, 여러분을 설탕 덩어리처럼 다루거나 50년 전 말투로 예쁘게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받아들일 건지 말 건지는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모든 사람이 모든 부분에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고, 그건 괜찮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걸 신경 쓰지도, 논쟁할 생각도 없습니다. (첫 번째 항목 참고)
여기는 네빌(Neville) 서브레딧이라는 걸 압니다. 모든 내용이 그의 가르침에서 비롯되고 기반하고 있지만, 시간이 흘렀으니 이제 일부는 진화하고 업데이트할 때가 됐습니다. 그래서 100% 네빌 용어나 인용구만 사용할 생각은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제가 매니페스팅에서 주로 사용하는 접근법은 ‘확언(Affirmations)’입니다. 왜 그런지는 설명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가장 편하게 느끼는 어떤 방법(시각화, 스크립팅, 약물 체험, 마치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행동하기, 보름달 아래서 벌거벗고 테일러 스위프트 노래 부르기)이든 전부 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그리고 의심이 많거나, 불안하거나, 두려움이 있거나, ‘논리적’이라는 사람들에게도 말씀드립니다. 당신이 걱정하는 그 문제를 왜 걱정할 필요가 없는지 ‘논리적인’ 근거로 설명해드릴 것입니다.
그럼 기본부터 간단히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매니페스팅은 어떻게 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초보자들에게 애매한 네빌의 인용구만 던져서 도리어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소원이 성취된 상태에 머물라, 안식일에 있으라.”
이게 대체 무슨 뜻이죠?
매니페스팅의 본질은 터무니없이 쉽습니다. 당신이 해야 할 건 단 하나 — 당신이 원하는 것을 이미 가진 사람으로서 생각하고, 상상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네, 정말로 그게 끝이에요.
무언가를 원합니까? 누군가를 원합니까? 어떤 경험, 물건, 직업? 좋아요! 욕망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게 본래 당신 것이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무엇이든, 누구든, 어떤 방식이든, 무슨 색이든, 급여가 얼마든 — 가능합니다.
그건 여기에 있습니다. 어디? 여기. 언제? 바로 지금.
무언가를 원하나요? 그렇다면 ‘소원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생각하세요 — 즉, 이미 그것을 가진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끝났습니다, 이미 당신 거고, 이미 여기에 있습니다.
확언 한 문장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구체적으로 (“나는 BTS 김태형과 결혼해서 5명의 아이를 키운다!”)든, 포괄적으로 (“정말 멋지지 않아?”)든 괜찮습니다. 정말로 그게 전부입니다.
유일하게 지연을 만들 수 있는 건 (당신의 매니페스팅을 망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것도요. 누가 뭐라고 했든, 당신 상황이 어떻든, 당신이 몇 개의 믿음을 갖고 있든 말든 전혀 상관없습니다. 정말로 아무것도 매니페스팅을 망칠 수 없습니다) — 그것을 반대하는 생각뿐입니다.
왜냐고요? 그것도 결국 매니페스팅이니까요. 단지 당신이 보고 싶은 세상의 ‘반대’를 매니페스트하는 셈인 거죠.
그런데 정말로 그것이 전부라면, 왜 이렇게 많은 혼란과 질문이 생기는 걸까요?
그렇습니다. 매니페스팅은 쉽고, 핵심 원리(그리고 유일한 원리)는 방금 말한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정보, 로어 오브 어트랙션(끌어당김의 법칙)과 로어 오브 어썸션(가정의 법칙)의 혼합, SNS와 틱톡, 사람들이 본질은 이해하지도 못한 채 마구 던지는 네빌의 명언들, 제한적인 믿음, 일반적인 세상관 등…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사람들은 여기에 각종 규칙과 지침,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덧붙이며 쓸데없이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 겁니다.
  
내가 가장 많이 본 ‘화끈한’ 주제부터 시작하자 – 집착(Obsession), 필요(Need), 원함(Want).
“소원에 집착하는 걸 어떻게 멈추죠? 그건 내가 부족함(lack)에 있다는 뜻인가요? 어떻게 안식일(sabbath) 상태로 살죠? X를 생각하면 그런 의미가 되나요?”
네, 원하든 필요하든 집착하든, 그대로 매니페스트할 수 있습니다. 원해도 되고, 필요로 해도 됩니다. 마음껏 집착해도 괜찮습니다.
이유를 설명하죠.
매니페스트하는 데 필요한 건 단지 ‘이미 내 것’ 혹은 ‘이미 내가 원하는 상태’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걸 별 이유 없이 이상하게 복잡하게 만들곤 합니다. 이유는 주로 이상한 도덕적 우위를 지키려 하거나, 아니면 이 법칙의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형태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당신의 매니페스팅을 막을 수 있는 건 단 하나, 그것을 반대하는 생각 뿐입니다. (그 반대 생각조차도 사실 ‘성공적으로’ 매니페스트하고 있는 것일 뿐이죠!)
‘놓아버려라(let go)’라는 말들… 왜요? 그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있나요? 왜 그걸 놔야 하죠?
“아, 그건 네가 부족함에서 출발했기 때문이야!” → 그런 소리 집어치우세요. 만약 그게 맞다면, 애초에 왜 그 욕망이 생겼을까요?
이 논리대로라면 무언가를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모든 상황이 다 나쁘다는 얘기인데, 그렇다면 어떻게 의식적으로 무언가를 매니페스트할 수 있겠습니까?
‘부족함에서 온다’는 게 실제로 의미하는 건, 원하는 것을 가지지 않았다고 직접 말하거나 암시하는 생각을 당신이 지속해서 품는 걸 말합니다.
당신의 현실은 내면의 생각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만약 내면의 생각이 ‘무언가를 찾고 있다’거나 ‘기다리고 있다’고 암시한다면, 당신의 잠재의식은 “아, 이건 아직 여기에 없구나”라고 인식하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언가를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것이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그리고 물론 거기에 집착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것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며, 나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한 해로울 게 없습니다.
우리가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은 나쁜 시나리오에 ‘집착’해서, 그것을 상상 속에 붙잡고만 있었는데(즉, 밤낮으로 그것에 대해 생각했는데) 결국 현실이 된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그렇다면 왜 그 반대 방향으로는 안 되겠습니까?
매니페스팅에는 ‘좋고 나쁨’이 없습니다. 오직 지속성만 있을 뿐입니다.
이걸 읽고, 다시 읽고, 완전히 이해될 때까지 새기세요.
매니페스팅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당신에게 잘 맞는 것이 바로 당신에게 자연스러운 방식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뭔가를 가지게 되면, 그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잖아요? 항상 찾으려고 하지도 않고.”
— 음, 부분적으로는 맞지만 100%는 아닙니다.
현실 속에 어떤 것이 존재하는 데 익숙해졌다고 해서 그것에 대한 ‘필요’가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당신은 누군가를 ‘갖고’ 있을 수 있고, 그 사람과 함께하면서도 여전히 그를 ‘원하고 필요로’ 할 수 있습니다.
사랑에 아주 깊이 빠져서, 그 사람에게 집착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여기서는 건강한 관계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습니다, 그건 다른 주제니까요.)
어떤 것을 가지고 있는 상태가 그것을 필요로 하거나, 현실 속에서 그걸 원하지 않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머릿속에서 그것을 계속 원하는 건 왜 안 되겠습니까?
여러 해 동안 짝사랑만 하던 사람과 결국 이어지게 됐다고 해 보세요.
정말 기쁘고, 날아갈 듯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그 상황에서 “아, 원래 이렇게 될 줄 알았어, 뭐 어쨌든 괜찮네.” … 이런 식으로 시큰둥하게 반응하겠어요?
문제는 ‘집착하느냐 마느냐’ 그 자체가 아닙니다.
진짜 관건은 **어떤 시나리오와 생각의 질(quality)**에 집착하느냐입니다.
만약 당신이 확언을 계속 반복하거나, SATS(잠들기 전 상상 상태)를 하거나, 이미 그것을 가진 듯한 생각을 반복하거나, 그에 대한 백일몽을 꾸는 방식으로 집착한다면 — 마음껏 집착하세요.
186034788437289번을 생각해도 됩니다. 24시간 7일 내내 머릿속에서 그걸 살며, 누가 신경 쓰나요?
그게 당신을 행복하게 하나요? 의심이나 나쁜 생각을 막아주나요? 좋습니다! 그것은 여전히 효과가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하고 있는 건 ‘이미 가졌다’는 생각뿐이니까요. 그 외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메탈리카에 감사!)
현실적으로는, 당신이 얼마나 많은 ‘안식일(Sabbath) 상태’에 들어가든, 사람들이 얼마만큼 네빌의 명언을 던지든 간에, 당신의 논리적인 머리는 완전히 꺼지지 않습니다.
뇌의 일부는 항상 어렴풋하게 “그게 여기에 없다”거나 “아직 3차원 세계에서 경험하고 있지 않다”는 걸 인식합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늘 ‘부족함’ 상태에 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매니페스팅이라는 행위 자체가 ‘원하고, 필요로 하고, 부족하다’는 상태를 전제로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개인적으로는, 억지로 ‘놓아버리려고’ 하거나, ‘너무 많이 생각하면 부족함을 뜻하는 거 아닐까?’라는 두려움 때문에 일부러 생각을 피하는 것보다, 차라리 집착하는 게 낫다고 봅니다.
그 두려움은 거의 확실하게 “내가 이걸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너무 많이 하나 적게 하나?”와 같은 불필요한 스트레스만 만들 뿐입니다.
결론적으로, 괜찮습니다! 전혀 문제 없습니다! 그것에 집착해도, 필요로 해도, 원해도, 심지어 제단을 만들어도 됩니다.
단, 머릿속에 들어가는 생각이 오직 하나 — ‘이미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함의를 가진 것뿐이라면, 이미 당신 것이고 끝난 겁니다.
    
–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 걸까요? 이거 해도 되나요? 이렇게 하면 X라는 의미가 되나요? Y에 영향을 주나요?” 멈추세요. 진지하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정말로 이걸 너무 복잡하게 만들고 스스로를 제한하는 걸 그만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말하거나 답변하는 방식은, 마치 쓸데없는 규칙이 너무 많아서 “이건 말하면 안 돼”, “이건 하면 안 돼, 왜냐하면 ○○ 의미가 있으니까” 이런 식으로 느껴지게 만듭니다. 이건 이전 챕터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예시로 초보자 스레드에서 본 질문을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약간 의역).
“내 성적 취향이 모욕당하거나 어떤 호칭을 듣는 건데, 이런 걸 즐기면 내 잠재의식(SC)에 영향을 미치나요?”
모든 바람은 당신을 위한 것이라면, 거기에는 당신의 성적 취향, 선호 등도 포함됩니다.
모든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걸 멈추세요. 당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그건 절대 그렇게 깊은 문제가 아닙니다!
매니페스팅은 생활 방식이자, 인생을 바꾸는 도구이며, 어떤 더 깊은 곳으로 가는 관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삶을 그냥 즐기고 재미있게 보내면 안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무조건 모든 것이 더 깊은 의미를 가져야 하거나, 더 높은 목적을 가져야 하거나, 무언가 함의가 있어야 하는 건 당신이 원할 때뿐입니다. 스스로를 좀 풀어주세요.
당신이 직접 규칙을 만듭니다.
어떤 것, 혹은 다른 것이 당신의 매니페스팅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그냥 결정할 수 있습니다 — 그리고 정말로 아무 영향도 없을 겁니다! (일종의 ‘역(逆) 플라세보 효과’라고 할 수 있죠.)
당신이 무엇을 하든 —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걸 멈추고, 의심하거나 이중으로 추측하는 걸 그만두세요.
그냥 하고 싶은 걸 하세요! 모든 기법과 방법을 다 써도 되고, 하나도 안 써도 됩니다.
하루에 소원에 대해 백만 번을 생각하든, 한 번만 생각하든, 표현이나 말투를 원하는 대로 하세요.
단, 그것이 당신에게 자연스럽고 ‘이미 가졌다’(혹은 100% 곧 가질 것이다)라는 함의가 담겨 있어야 합니다.
일단 ‘이미 가졌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면 — 그 외의 것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네, 이 말은 제가 여러 번 반복할 겁니다.)
다시 한 번, 저를 따라 말해보세요: “나는 제대로 하고 있다! 괜찮다! 그래,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 수 있다! 내가 그렇게 된다고 ‘결정’하지 않는 한, 아무것도 내 매니페스팅이나 자기 개념(Self-Concept)에 영향을 주거나, 망치거나, 지연시키거나, 건드릴 수 없다!”
아무것도 당신의 소원을 망치거나 빼앗을 수 없습니다.
유일한 지연 원인은 ‘이미 가진 사람’이 아니라 그 반대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알겠죠?
그리고 네 — 가끔 의심이 드는 건 정상입니다. 특히 ‘큰’ 소원일수록요.
울어도 되고, 소리쳐도 되고, 슬퍼해도 되고, 화내도 되고, 심지어 완전히 무너져도 됩니다.
단, 그 뒤에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머릿속에서 당신이 원하는 것을 이미 가진 상태로 돌아오면 됩니다.
어떤 방법이든 당신에게 맞는 걸 하세요 — 확언을 반복하거나, 상상 속 장면을 되풀이하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거나, 크리스털을 들고 명상하거나, 심지어 좀 별난 방법이라도 좋습니다.
그저 그 상태로 다시 돌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확언이 최강인 이유 — 그건 단지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생각이 현실을 만들죠.
따라서 의식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만, 원하는 방식으로만 생각하게 만든다면, 그것이 현실 속에서 보이게 됩니다.
시각화? SATS? 내적 대화? 상상 속 행동? 스크립팅? 비전보드? 좋습니다.
이 모든 건 결국 당신이 원하는 것을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방법일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루에 6만~7만 개의 생각을 하며, 대부분은 의식하지도 못합니다.
그리고 그 생각들 대부분이 당신의 소원과 모순된다면, 그것을 경험하는 데 더 오래 걸리게 됩니다.
그래서 ‘멘탈 다이어트(mental diet)’가 중요한 겁니다 — 그리고 확언은 이를 유지하는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왜 ‘믿음’이나 ‘감정’을 반드시 가질 필요가 없느냐 — 당신은 이미 무언가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건 아마 지금의 3차원 현실(3D 상황)일 것이며, 당신의 감정도 거기에 맞춰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당신의 매니페스팅 능력을 그런 것에 기반해야 할까요?
네빌이 “감정이 비밀이다”라고 했죠 — 맞습니다. 하지만 그는 확언이나 상상을 할 때마다 강렬한 행복감을 느껴야 한다는 뜻으로 말한 게 아닙니다.
그가 말한 건 ‘이미 끝났다’는 것을 아는 감정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흥분된 기쁨일 필요 없이, 그냥 차분하고 자연스러운 ‘앎’일 수도 있습니다.
믿음? 마찬가지입니다.
생각을 많이 할수록 자연스럽게 믿음이 커지게 됩니다.
그러니 ‘충분히 믿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시작할 필요가 없습니다.
코치, LOA(끌어당김의 법칙) 관련 계정, 각종 기법들에 대해서 — 매니페스팅을 위해 이들 중 어느 것도 필수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당신이 집중하고 지속하는 데 도움을 준다면 사용하세요.
다만, 그들에게 원래 없던 ‘힘’을 부여하지는 마세요.
어떤 기법은 당신에게 재미있게 느껴질 수 있고, 또 다른 기법은 억지로 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억지스럽게 느껴지는 것들은 바로 버리세요.
시간에 대해서 — 시간은 3차원(3D) 개념입니다.
당신이 어떤 것을 ‘원하는 순간’, 그 소원은 이미 존재합니다.
걸리는 유일한 ‘시간’이란, ‘갖지 않았다’는 생각 대신 ‘이미 가졌다’는 생각을 유지하는 데 드는 시간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몇 주/몇 달/몇 년이 지났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그건 단지 당신이 그 부재를 계속해서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일 뿐입니다.
그 생각을 멈추고 ‘지금 이미 내 것’이라고 결정하면, 시간은 말 그대로 무의미해집니다.
그게 2시간 뒤에 나타나든 2년 뒤에 나타나든, 원리는 똑같습니다.
다만 ‘이미 가졌다’는 상태를 지속할수록, 3차원 세계에서 그것을 더 빨리 경험하게 됩니다.
3차원(3D)은 단지 4차원(의식·마음)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상상 속(4D)에 붙잡고 있는 것이 원인이고, 3D에서 보이는 현실은 그 결과입니다.
3D가 주도권을 쥔 것처럼 반응하는 걸 멈추세요 — 그것은 과거의 생각을 반영하는 ‘구식 뉴스’일 뿐입니다.
3D에서 보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것과 싸우거나 반대 확언을 하지 마세요.
그냥 당신이 선호하는 내면의 현실 속에 머무르기만 하면 됩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기법도, 의식도, 복잡한 절차도 필요 없습니다. 오직 ‘결정’과 ‘지속’뿐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실수는 3D를 원인으로 여기고, 그걸 직접 바꾸려 하는 것입니다.
그건 거꾸로 일하는 겁니다.
원인(당신의 생각)을 바꾸면, 결과(3D)는 반드시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법칙’입니다.
결론 — 매니페스팅을 복잡하게 만들지 마세요.
원하는 것을 결정하고, 이미 그것이 내 것이라고 가정하며, 그 가정을 지속하세요.
그리고 3D에서 이에 반하는 모든 것은 무시하세요. 그게 전부입니다.
기법, 규칙, 단계들은 재미있거나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모두 선택 사항입니다.
법칙은 단순합니다 — 당신이 ‘사실’이라고 가정하는 것이 지속됩니다.
그러니 마음을 놓으세요. 망칠 수 없습니다. 이 법칙은 ‘깨뜨릴’ 수도 없습니다.
당신은 항상 매니페스트하고 있으니, 진짜로 원하는 것을 매니페스트하기로 선택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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